[피겨 사대륙선수권] 한국 여자싱글의 비약적인 발전

대만에서의 사대륙선수권 셋째날,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이 열렸다.

박소연 선수가 4위, 최다빈 선수가 7위, 김나현 선수가 9위에 오르는 역대 최고 수준의 업적을 달성했다. 이들은 한 달 전 종합선수권에서의 돌풍이 단지 어린 초등 선수들 뿐 아니라 한국 여자싱글 전체에 불었다는 것을, 선수들의 기반이 실로 단단해졌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꾸준한 근성과 노련함을 갖춘 최다빈

쇼트 프로그램에서 10위였던 최다빈 선수는 기술점 63.65, 구성점 53.27, 합계 116.92점으로 프리 6위로 뛰어올라, 총점 173.71점으로 최종 8위를 기록하며 프리와 총점 개인기록을 경신했다. 후반 더블 악셀-트리플 토룹에서 회전이 부족하면서 스텝아웃된 실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점프를 깔끔하게 성공했다. 쇼트에서 아쉬웠던 스핀도 모두 레벨4를 받으며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 중 가장 높은 기술점을 얻었다.

2015 랭킹대회에서 최다빈 ⓒ Sung, Dae-woo

이 선수에게 있어 가장 놀랍고 대단한 점은 꾸준함이다. 단 한 번 지난 시즌의 랭킹대회에서 컨디션 난조로 국가대표 탈락 위기에 처했으나, 종합선수권에서 완벽하게 부활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킨 바 있다. 그 때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무너진 경기를 보여준 적이 없는 선수다. 이번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두 번 모두 동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대회 배정이나 운이 좋았다면 충분히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는 점수였다.

또한 러츠 엣지를 다른 점프에 영향을 주지도 않으면서 단 한 시즌만에 고쳐오기도 했다. 오랫동안 습관이 든 엣지를 시니어가 되고 나서 교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뿐더러 점프를 다시 배우는 거나 마찬가지다. 조금씩 회전이 부족하던 트리플-트리플도 이번 시즌에는 깨끗하게 뛰고 있으며, 표현력도 이전보다 좋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시즌 마지막 대회인 세계선수권에서 활약을 기대한다.

김나현, 철저한 준비로 기회를 잡다

쇼트 프로그램 클린으로 8위를 기록했던 김나현 선수는 기술점 59.50, 구성점 52.80, 합계 112.30으로 총점 170.70을 받아 프리에서는 8위, 최종 9위에 올랐다. 트리플 룹-트리플 룹을 시작으로 모든 점프를 성공시켰고, 경기를 끝내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룹의 후속 점프와 트리플 살코에서 언더 판정을 받았지만 개인기록을 무려 24점 이상 경신하며 인상적인 데뷔를 치렀다.

랭킹전에서 우위였던 변지현 선수가 유스 올림픽을 선택하면서 김나현 선수에게 기회가 돌아왔는데, 그 기회를 잡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평소에도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해 왔고, 초등 3인방의 강세에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트리플 룹-트리플 룹을 본인의 시그니처로 만들어오며 높은 성공률을 보이고 있는 선수다. 몇 년 전과 비교했을 때 무엇보다 표현력의 발전이 놀랍다. 본인만의 느낌있는 손동작과 안무가 곡과 잘 어우러져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6 종합선수권에서 김나현 ⓒ Sung, Dae-woo

이번 대회에서 김나현 선수의 발견은 한국 피겨의 비약적인 성장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무조건 점프만 잘 뛰어서는 국제대회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국내 여자싱글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 많은 선수들의 프로그램이 트리플 콤비네이션을 비롯한 트리플 5종을 넣어 클린을 목표로 하는 구성이 되어버린 지금, 모든 스핀에 레벨4와 가산점을 받는 것은 거의 기본이 됐다. 여기에 구성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되면서 선수들이 연기력 또한 크게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 선수가 종합선수권 11위였다는 것을, 국가대표도 탈락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김나현 선수는 오랫동안 꾸준히 갈고 닦아온 선수였다.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세 시즌 연속 주니어 그랑프리에 2개 대회씩 출전해 5,6위를 유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녀의 이번 선전은 단지 반짝하는 행운이 아닌, 철저히 준비된 상태에서 나온 결과인 것이다.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린 박소연, 실력을 입증하다

오랜만의 쇼트 프로그램 클린으로 5위에 올랐던 박소연 선수는 기술점 60.69, 구성점 56.74, 합계 116.43점으로 프리에서 7위, 최종 178.92점을 획득해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하며 이번 미국 내셔널 챔피언인 그레이시 골드를 제치고 4위를 거머쥐었다. 시즌 초,중반까지 힘든 시기를 거쳤지만, 역시 현재 국내 선수 중 가장 시니어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선수라는 것을 이번 대회에서 당당히 증명해 보였다.

박소연 선수가 경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일본의 사토코 미야하라가 엄청난 점수를 받으며 장내를 뜨겁게 달궜고, 포디움 멤버는 사실상 확정지어진 상태였다. 긴장이 풀리지 않은 채로 마지막 순번으로 등장한 박소연 선수는 첫 트리플 러츠를 불안하게 시작했다. 이어 더블 악셀-트리플 토룹을 깔끔하게 뛰었지만 트리플 플립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베테랑답게 실수를 후반까지 끌고 가지 않았으며, 남은 요소를 하나하나 차분하게 성공시켰고 최선을 다해 경기를 마쳤다. 4위라는 결과를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 박소연 선수는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의 경기를 해내는 값진 경험을 얻었다. 또한 갈라에도 출연해 경기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생기발랄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성공했을 때의 점프 질이 정말 좋은 선수고, 현재 한국 여자싱글에서 가장 큰 경쟁력을 갖췄지만, 늘 불안했던 쇼트 프로그램 때문에 2014년 올림픽 무대와 세계선수권 9위 이후 자신의 위치를 올리지 못했다. 올해 종합선수권에서는 초등 3인방과 최다빈 선수에게 밀려 5위를 기록했으나, 동계체전 프리 클린으로 자신감을 회복해 왔다. 드디어 이번에 쇼트 클린의 벽을 넘고 나니 구성점도 올라가고, 국제무대에서의 입지도 다져놓게 됐다. 그토록 기다려 온 반가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세계선수권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치길 바란다.

2016 박소연 ⓒ Sung, Dae-woo

이번 대회의 좋은 성적 덕분에 세 선수 모두 다음 시즌 시니어 그랑프리 티켓을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사대륙선수권에는 국가별로 3명씩 출전이 가능한데 모두 톱10에 오른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강대국들의 힘에 의해 움직이고 점수가 매겨지는 세계에서 실로 대단한 성과다. 내달 열리는 주니어 및 시니어 세계선수권을 통해 한국 피겨의 입지가 더 단단히 다져지길 기대한다.

한국 여자싱글의 기반을 말하다

김연아 선수의 은퇴 후 2년. 그 전만 해도 한국 여자싱글이 이렇게 발전할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박소연, 김해진 선수가 어린 나이에 올림픽 무대를 밟았을 때, 이런 감격스러운 기회가 또 올 수 있을지, 이후의 한국 피겨가 과연 성장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김해진 선수가 부상으로 고전 중이고 박소연 선수는 다소 돌아온 길이기도 했지만, 불과 2년만에 한국 여자싱글은 ISU 공인 국제대회에서 3명 전원이 톱10, 170점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2016년은 단연코 한국 피겨의 전환점이 되기에 충분한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본격적으로 페어와 아이스댄스 팀이 국제무대를 밟았고, 특히 여자싱글은 주니어 데뷔도 하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휩쓸었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시니어 ISU 공인 국제대회 톱10보다 어려울 정도. 김연아 선수를 동경해 스케이트를 신은 이 어린 선수들은, 선배들의 꾸준한 경쟁과 활약으로 만들어진 기반 안에서 꽃을 피웠다.

밴쿠버 올림픽 13위 곽민정, 주니어 그랑프리 금메달 김해진, 세계선수권 9위 박소연 선수를 선두로 최다빈, 김나현 선수,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여러 선수들이 줄곧 김연아 이후의 한국 여자싱글을 책임져왔다. 매년 신예들이 배출됐고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시즌을 거듭할수록 그 층은 두터워졌다. 어린 선수들은 선배들을 보며 기량을 늘리고, 또 시니어 선수들은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보며 더 실력발휘를 하게 된다. 지난 종합선수권을 휩쓴 초등 3인방과 강력한 중상위권 선수들, 그리고 이번 사대륙선수권 시니어 3인방의 활약이 바로 그 예다.

기반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의 스타를 탄생시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전설이라 불리는 올림픽 챔피언이 나왔는데, 환경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연아 선수 덕분에 한국 피겨가 이렇게 발전하고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어린 후배 선수들이 올해 정말 놀라운 성과를 얻고 있지만, 멀리 바라보면 갈 길이 멀다. 단지 연아 키즈를 만들고 당장 성과를 내는 데만 집중해서는 한국 피겨가 발전하지 않는다. 전 종목에 걸쳐 좋은 선수들이 계속 많이 나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선수들이 많아질수록, 전용 링크장과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의 부재는 그 무엇보다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로 남는다. 환경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연아 키즈가 나오기만을 바라보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실력이 출중하게 늘고 있는 선수들에 비해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빙상연맹, 이제는 정말 한국 피겨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인지해 나서야 하고 투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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